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현대 사회의 비정함을 담아낸 블랙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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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배급사 CJ ENM, 공식홈페이지 : https://www.cjenm.com/ko/featured-contents/%EC%96%B4%EC%A9%94%EC%88%98%EA%B0%80%EC%97%86%EB%8B%A4/>

긴 추석명절에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입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부랴부랴 찾아간 영화관에서 만난 이번 영화는 ‘어쩔수가없다’ 입니다.

2025년, 한국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12번째 장편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왔습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국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고용 불안과 그로 인한 인간 존엄성의 붕괴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 화려한 배우진과 함께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학적 감각을 더해 완성되었습니다. 과연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까요?

줄거리: 실직의 충격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는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아이, 반려견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만수는 석 달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1년이 넘도록 마트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면접장을 전전하게 됩니다. 결국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만수는 문 제지 회사를 찾아가 필사적으로 이력서를 내밀지만, ‘선출'(박희순) 반장 앞에서 굴욕만 당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만수는 충격적인 결심을 합니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 그는 자신과 같은 제지 업계 구직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캐릭터 :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물들

유만수 (이병헌)

25년간 한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해온 가장이지만, 갑작스러운 해고로 정체성의 위기를 맞습니다. 처음에는 선량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으나, 실직 후 겪는 사회적 모멸감과 경제적 압박으로 점차 도덕적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병헌은 평범한 가장에서 살인자로 변모해가는 복잡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해냅니다.

이미리 (손예진)

만수의 아내로, 남편의 실직 후에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강인한 여성입니다. 치과에서 일하며 가계를 꾸려나가는 한편, 남편의 범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보이는 복잡한 감정과 선택이 캐릭터의 깊이를 더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손예진이 “이병헌보다 훨씬 어려운 인물을 연기했다”며 “미묘한 표현의 대가”라고 칭찬했습니다.

최선출 (박희순)

문 제지의 반장으로, 만수에게 굴욕을 안겨주지만 사실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고가의 위스키를 즐기고 시가를 피우는 등 만수가 잃어버린 중산층의 삶을 상징하는 인물로, 만수의 마지막 타겟이 됩니다.

구범모 (이성민)

만수와 마찬가지로 제지업계에서 해고된 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인물입니다. 아내의 불륜으로 더욱 비참한 상황에 처한 그는 만수의 첫 번째 타겟이 됩니다.

이아라 (염혜란)

범모의 아내로, 남편의 실직과 알코올 중독에 지친 연극배우입니다. 젊은 배우와의 불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고시조 (차승원)

제지업계 기술자였지만 해고된 후 구두가게에서 일하는 인물입니다.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만수와 닮아있지만, 그 역시 만수의 타겟이 됩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의 의미

영화 제목인 ‘어쩔수가없다’는 현대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로, 책임 회피의 수단이자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작용합니다. 만수가 해고될 때 회사에서 건넨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후에 만수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며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 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쩔 수가 없다는 내게 항상 입에 붙어 있는 말”이라며 “관객들이 감탄사처럼 한 단어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고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나 툭 튀어나오는 표현인 만큼 일부러 띄어쓰기도 없이 한 단어처럼 지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가 노동 생산성으로만 평가되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만수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배경에는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상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주는 특징

블랙 코미디의 절묘한 활용

이 영화는 잔혹한 살인을 다루면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블랙 코미디의 요소를 절묘하게 활용합니다. 특히 만수가 범모를 살해하려는 장면에서 오디오 스피커 때문에 세 인물이 서로 대화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황이나, 선출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충치를 맨손으로 뽑는 장면 등은 섬뜩함과 우스꽝스러움이 공존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연출입니다.

상징과 미장센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상징과 미장센이 활용됩니다. 뱀과 사과나무는 성경 속 에덴동산과 선악과를 연상시키며, 만수의 도덕적 타락을 암시합니다. 또한 종이(제지)와 나무(첼로)의 대비를 통해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가치와 예술의 순수성을 대조합니다.

음악의 활용

조영욱 음악 감독의 오리지널 스코어와 함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김창완의 ‘그래 걷자’ 등 한국 대중음악과 모차르트의 클래식 음악이 적절히 활용되어 장면의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범모 살해 장면에서의 음악 선곡은 블랙 코미디의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평가와 논란

이 영화는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100%, 메타크리틱 스코어 86점을 기록하며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한국 개봉 직후에는 네이버 평점 6점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긍정적 평가

  •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블랙 코미디 요소가 탁월하게 구현됨
  • 이병헌, 손예진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 신자유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메시지
  •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의미가 담긴 장면 구성

부정적 평가

  • 만수의 극단적 선택(살인)에 대한 개연성 부족
  • 조연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소모된다는 지적
  • 살인이라는 자극적 소재에 비해 극적 재미가 부족하다는 의견
  •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CCTV 등 현대 감시 시스템 고려 부족)

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를 “어쩔 수 없다고 내세우는 자들이 만들어낸 실낙원의 통렬한 순환”이라고 평했으며, 씨네21의 정재현 평론가는 “눈이 시리게 웃기고 서글픈 신자유주의의 푸른 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흥행과 성과

17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손익분기점인 130만 명을 개봉 8일 차에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2025년 10월 11일 기준 25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또한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국제 관객상 수상, 제58회 시체스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등 국제 영화제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2026년 3월에 열리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부문 한국대표작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제작 뒷이야기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을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원래 2017년에 할리우드에서 영어 영화로 제작할 준비를 했으나, 투자가 되지 않아 무산된 바 있습니다. 결국 한국-프랑스 합작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원작 소설의 첫 영화화를 맡았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그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KG PRODUCTIONS가 참여했습니다.

처음 고려했던 영화 제목은 ‘모가지’와 ‘도끼’였으나, 너무 잔인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어쩔수가없다’로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2005년작 ‘친절한 금자씨’부터 6편의 시나리오를 연이어 함께 썼던 정서경 작가가 이번 영화에는 22년 만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배우들의 재회와 새로운 만남

이 영화는 여러 배우들의 의미 있는 재회와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25년 만에 박찬욱 감독과 재회했으며, 손예진은 출산 후 첫 복귀작으로 박찬욱 감독 영화에 처음 출연했습니다.

오달수는 ‘박쥐’ 이후 16년 만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며, ‘올드보이’,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에 이어 본작까지 총 여섯 편을 박찬욱 감독과 함께 작업하여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병헌, 박희순, 오달수는 ‘오징어 게임 3’ 출연 이후 반 년도 안 돼서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병헌과 이성민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 이후, 이병헌과 차승원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이후 재회하는 등 다양한 인연이 얽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 작품의 새로운 시도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최초로 IMAX와 Dolby Cinema 포맷이 등록되었으며, 동시에 최초로 특별관 컨버팅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감독의 영화가 점차 기술적으로도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박찬욱 감독 작품들 중 ‘달은… 해가 꾸는 꿈’, ‘공동경비구역 JSA’, ‘헤어질 결심’ 이후 4번째로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이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수위가 낮아졌음을 의미하지만, 여전히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예술성과 메시지는 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결론

‘어쩔수가없다’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어떻게 평가절하되는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전작인 ‘헤어질 결심’이 시라면, 본작은 산문과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으며, ‘헤어질 결심’은 여성성, 본작은 남성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며 내뱉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훼손되고,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관심 가질 만한 요소들

이 영화를 관람할 때 특히 주목해볼 만한 요소로는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기독교적 모티프(뱀, 사과나무, “다 이루었다”는 대사 등)와 제지(종이)와 첼로(나무)의 대비를 통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또한 만수의 집 마당에 심은 사과나무가 영화의 결말에서 갖는 의미와, 리원의 첼로 연주가 가족의 비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흥미로운 해석 포인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포스터에 숨겨진 복선(장갑 낀 손이 범모의 머리를 겨누는 구도)과 영화 내내 반복되는 “어쩔 수가 없다”는 대사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의 입을 통해 나오는지 주목해보는 것도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처: CJ ENM 공식홈페이지, https://www.cjenm.com/ko/featured-contents/%EC%96%B4%EC%A9%94%EC%88%98%EA%B0%80%EC%97%86%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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