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의 평범성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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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4, 출처:티빙>

2023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자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국제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이 수용소 바로 담장 너머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상을 담아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영화는 직접적인 폭력 장면 없이도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극단적 대비를 통해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것일까요?

영화의 줄거리와 주요 인물

1940년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다섯 자녀와 함께 수용소 담장 바로 옆에 위치한 아름다운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헤트비히는 정원 가꾸기에 열중하고,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뛰놀며, 가족은 함께 식사하고 일상을 즐깁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일상의 바로 담장 너머에서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대량학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루돌프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는 ‘업무’를 수행하고, 저녁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영화는 이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악의 평범함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한편, 아우슈비츠 근처에 사는 폴란드 소녀 알렉산드라(줄리아 폴라체크)는 밤마다 수용소 근처에 사과를 몰래 두며 작은 저항을 시도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의 불꽃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독특한 연출과 음향으로 전달하는 공포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연출 방식은 매우 독특합니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달리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과 배경에 깔리는 수용소의 소음, 총소리, 비명소리를 통해 관객이 상상하게 만듭니다.

특히 이 영화의 음향 디자인은 탁월합니다.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 장면에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수용소의 소리들은 관객에게 불편함과 공포를 선사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들려오는 집약된 소리는 베를린 지하철, 함부르크 축구 경기장, 2022년 파리 폭동 등 전 세계에서 수집한 소리를 혼합한 것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카메라 또한 관객과 영화 사이에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고정된 앵글이나 연극 무대처럼 프레임을 잡아 관객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러한 냉정한 시선은 오히려 상황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고증

영화에 등장하는 회스 가족의 저택과 일상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합니다.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은 정말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담장 옆에 살았으며, 헤트비히가 정원 가꾸기를 즐겼던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원 한가운데 있는 정사각형 수영장 역시 실제 존재했던 것입니다.

촬영은 실제 아우슈비츠와 그 인근에서 이루어졌으며, 제작진은 1940년대 초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회스 가족의 집 모형을 세트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적 배경은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특히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들은 원작소설에 없는, 글레이저 감독이 사전조사 중 만난 실존 인물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코워제이치크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합니다. 당시 아우슈비츠 근처에 살던 이 소녀는 밤마다 유대인들의 호송 루트와 노역 장소에 몰래 과일을 두었다고 합니다.

악의 평범성을 마주하다

영화의 가장 큰 충격은 루돌프 회스가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가족 여행을 계획하며, 애완동물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러한 대비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강렬하게 시각화합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더욱 소름 돋게 만듭니다.

헤트비히 역시 담장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도 자신의 정원 가꾸기와 가족의 안락함에만 집중합니다. “덩굴이 자라서 전부 덮어버릴 거에요”라는 그녀의 대사는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속 상징적 장면들

영화에는 여러 상징적인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루돌프가 아이들과 강에서 수영하다 인간의 머리뼈 일부를 발견하는 장면, 헤트비히가 정성스럽게 가꾸는 화려한 꽃들이 클로즈업되는 장면, 폴란드 소녀가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포착되는 장면 등은 모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루돌프가 미래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방문하는 듯한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가 자신의 범죄가 역사에 기록될 것임을 깨닫고 구토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모습은 그의 인간성이 이미 완전히 소멸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검은 화면이나 빨간 화면은 마치 무대 위에 커튼이 내려오는 것처럼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공연’처럼 진행되었음을 암시합니다.

특별한 촬영 방식

영화의 촬영 방식도 매우 독특합니다. 실제 집처럼 만들어진 세트 안에 여러 개의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스태프들은 모두 벽 뒤에 있는 트레일러로 철수했습니다. 배우들은 마치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습니다.

회스 역의 크리스티안 프리델은 “단순히 카메라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수준을 넘어서 촬영 내내 우리를 보는 눈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촬영장에는 엄청나게 무거운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헤트비히 역의 산드라 휠러는 나치를 연기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 캐릭터에 인간다움을 최대한 제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평론가들의 평가

영화는 국내외 평론가들로부터 거의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는 “끔찍한 범죄에 연루된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를 냉정하게 조사하는,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잔혹 행위 뒤에 자리잡고 있던 세속적인 모습들을 관객들로 하여금 차갑게 바라보게 강요한다”라는 총평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박평식 평론가는 “고요한 잔악, 절멸의 사운드”라는 제목으로 9점(10점 만점)을 부여했으며, 이동진 평론가는 2024년 두 번째 만점작으로 선정했습니다. 김소미 평론가는 “악의 진부함을 응시하는 전위적 시점의 충격파”라고 평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역시 자신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는 평을 내렸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가진 의미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독일어 “das Interessengebiet”를 번역한 것으로,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와 그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여기서 ‘Interest’의 의미는 ‘관심’이 아니라 ‘금전적 이득’에 가깝습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 주변 농지를 폴란드 지주들로부터 몰수한 뒤, 수용소 포로들을 노역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이 제목은 또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무시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지내는 독일인들의 ‘관심 영역’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흥행과 수상 실적

영화는 예술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개봉 12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개봉 76일 차에는 20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난해한 연출과 무거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를 거둔 것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강력하게 전달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수상 실적도 화려합니다. 제76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사운드트랙상,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국제영화상과 음향상,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영국 작품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음향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감독의 의도와 논란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유대계임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를 가해자의 시선에서 그린 이유에 대해 “대량 학살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손쉽게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내재된 가해자와의 유사성을 보는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그는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세요”라고 말하며 가자 전쟁의 “비인간화”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발언은 일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끔찍한 범죄를 목격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가? 악은 정말 특별한 괴물들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인가,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척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책임에 대한 보편적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관심 가질 만한 요소들

이 영화를 감상할 때 특별히 주목할 만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먼저 음향 디자인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감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벽 너머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소리들과 엔딩 크레딧 음악은 강력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또한 산드라 휠러의 연기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는 헤트비히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걸음걸이와 몸짓을 개발했으며, 의상 역시 그녀의 캐릭터를 반영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디테일은 캐릭터의 복잡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현대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보여주는 부분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이는 과거의 비극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하고 기억해야 할 교훈임을 상기시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역사의 어두운 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우리 자신의 도덕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실제 역사의 후일담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은 실제 역사의 결말도 주목할 만합니다. 루돌프 회스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바로 그가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비참한 삶을 살았는데, 아내 헤트비히는 전범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연금이나 지원금을 받지 못했고, 1989년 사망했을 때는 자식들에 의해 남편의 성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매장되었습니다.

자식들은 성인이 된 후 독일을 떠나 해외로 도피했으며, 손자들까지도 아우슈비츠 생존자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역사적 죄악이 세대를 넘어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실제 역사의 후일담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합니다. 악행의 결과는 결국 가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돌아오는 것일까요? 역사의 심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이 영화는 그런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지며, 깊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관람 평점

3.7/5.0

잔인하지 않은 장면이지만, 잔인한 영화.
평론가들의 해석을 먼저 접하고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장면을 보고난 이후에 설명을 통해서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영화에 대한 기피가 있어 높은 평점을 주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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