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라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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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이런 생각이 든 적 있다.

“아…이 사람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죄책감이 먼저 찾아왔다.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그 생각을 얼른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듯 덮어버렸다. 하지만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잠들기 전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다시 떠오른다.

중년의 봄은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진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슬쩍 멀어지고, 앞으로 남은 계절을 셈하게 되는 나이… 그 계절 어딘가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다.

“이 관계, 나에게 남겨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감정의 무게…

몸이 무거울 때 우리는 체중계에 올라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의 무게는 잘 재지 않는다. 아니, 사실 어떻게 재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 무게를 들고 산다.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관계는 꼭 나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게 더 어렵다. 나쁜 사람이라면 차라리 쉽게 끊겠지만,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함께 있으면 이유 없이 지치는 사람.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허탈한 사람. 문자 하나에 괜히 머리가 아파오는 사람.

심리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두고 ‘에너지 드레인(Energy Drain)’이라고 부른다. 관계의 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의 에너지 흐름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불균형 상태를 말하데,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소진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처음에는 고립이 무서워서 관계를 끊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천히 들여다보면, 두려움의 정체가 조금 다르다.

관계를 정리하고 나서 남는 조용한 공간, 그 공간 안에 오롯이 드러날 ‘나’가 두려운 건 아닐까. 오랫동안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누군가의 기대를 맞추고, 누군가와 어울리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혼자 있는 자신이 어색해진 것. 마치 오래된 소음 속에 살다가 갑자기 고요해졌을 때의 그 낯선 귀울림처럼….

사회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고립은 사람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자신을 숨겨야 한다고 느끼는 상태다.

어쩌면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조용해진 방 안에서 오래 외면해온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중년’이라는 계절의 특수함

20대에는 관계가 넓어야 한다고 배웠다. 인맥이 곧 기회라고 했으니까. 30대에는 바빠서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직장, 결혼, 육아, 경력.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40대가 되면서, 이상하게 멈추게 된다. 달리던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 그 순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관계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사람과 나는 왜 만나고 있지?’
‘우리 사이에 진짜 무엇이 남아있지?’
‘나는 이 관계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지?’

어쩌면 이 질문들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신호인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정리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관계를 정리한다는 말이 차갑게 들릴 수 있다. 마치 서랍 속 오래된 물건을 버리듯, 사람을 내치는 이미지가 겹치니까…

어쩌면 관계 정리는 상대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되찾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만남의 빈도를 줄이거나, 연락에 조금 천천히 답하거나, 모임 자리에 매번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스스로 허락하는 것. 그 작은 용기들이 쌓여서, 조금씩 나에게 돌아오는 에너지가 생긴다. 그 에너지를 진짜 소중한 사람에게, 혹은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나 자신에게 쏟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맞는게 아닐까.

고립이 아니라, 선택

관계를 줄이면 반드시 고립되는 것일까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관계의 수가 줄어도, 남은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면 오히려 덜 외로워진다. 열 명의 사람과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두 명의 사람과 진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훨씬 나을테니까.

고립은 ‘아무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나와 연결된 사람이 없는 상태’. 그러니까 관계의 숫자가 아니라, 소수지만 진짜인 연결.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조용한 오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도 오랫동안 방치해온 나 자신을 잠시 되돌아 보는 시간이니 그 또한 중요한 시간이다.

오늘 , 나에게 물어보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가장 나다웠나?

그렇게 구분되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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